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청소년시절 아버지께서 술에 취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버지를 나쁜 아버지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하고 명예도 없으며 가난하기까지 한 아버지였지만 그 이유로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도 없다. 아버지는 좋고 나쁨을 떠나 그냥 말 그대로 아버지였다.  

어느 비행소년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쓴 편지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보통의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라면 대부분 자신의 아버지를 이 소년과 같이 평가하지 않을까.

아버지,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지난 긴 시간동안 그 답답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이제야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고 지원만 해 주시면서 묵묵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는 그 사명 하나로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도,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 말씀도 못하시고,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뭐라도 시도해 보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나이 들어 정작 자식들의 다정을 기대하지만 그것마저도 내색하지 않고 삼키는 우리 아버지.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어느 듯 나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아이들에게 아버지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고 있는지 노심초사할 때가 많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가끔씩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나는 내 아버지와는 달리 경제적 가난에서 벗어났기에 아이들에게 가난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걱정되는 것은 내 아이들에게 정신적 가난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 내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인격 수양의 부족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라도 하였을 때는 마음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랄 뿐이다.

명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명수는 2010년, 2011년, 2012년 세 번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으나 비행내용이 그리 중하지 않아 모두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보호자에게 보내지는 처분을 받았다. 명수는 2012년 6월에 받았던 보호처분에서 정한 준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명수 어머니는 명수가 세 살 때 집을 나가 버렸기에 명수와 그의 형은 편부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명수 아버지가 일로 바깥에 있을 때는 아홉 살 위의 형이 명수를 돌보았다. 명수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가 형이 자신을 업고 유치원에 데려주었을 때라고 한다. 명수 아버지는 재혼한 적이 있으나 가정불화로 곧 이혼하였다. 명수는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출을 시작하였고, 그것은 바로 비행으로 연결되었다.

명수는 가출생활을 하던 중 불량배들에게 눈 부위 등을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으나, 제 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왼쪽 눈은 실명이 되어 의안을 하였고, 오른쪽 눈은 백내장 등으로 인해 심한 난시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즉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오른쪽 눈마저 실명이 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명수는 지적장애 2급이지만 명수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명수가 고등학교 1학년을 자퇴하고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수는 자신이 절대로 지적장애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탓인지 명수는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본인의 학력을 허위로 진술하는가 하면,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한 채 형처럼 태권도사범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명수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쓴 반성문은 명수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쓴 것이었겠지만 분량이 다섯줄도 채 되지 않았다.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침표도 찍혀 있지 않았다. 5년 째 소년보호재판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짧은 반성문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반성문을 통해 명수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저는 보호관찰소 위탁을 왔습니다. 잠깐 동안 판단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사건을 크게 만들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한번만 용서를 해 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신뢰를 깨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2013년 7월 명수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명수가 다시 저지른 비행내용과 준수사항을 위반한 정도, 명수의 건강상태 등으로 보아서는 명수를 소년원에 보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국선보조인은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며 명수를 그대로 둔다면 오른쪽 눈마저 실명할 가능성이 있으니 소년원에라도 보내 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면서 명수 아버지도 같은 의견이라고 하였다. 명수 아버지로서는 형편상 명수의 눈을 치료해 줄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출을 상습적으로 일삼는 명수를 붙잡아 놓고 치료를 시킬 수도 없으니 오히려 소년원에 가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수 아버지에게 물었다.
“정말로 소년원에 보내도 되겠습니까?”
“예, 판사님, 명수를 소년원에 보내 주십시오. 택시기사 수입으로서는 치료비를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명수의 눈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두었지만 재판에서 이기게 될지, 이기게 되더라도 돈을 언제 받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사소송에서는 명수에 대한 신체감정도 실시해야 됩니다. 그런데 감정비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꼭 소년원에 보내 주십시오.” 

그래서, 법정에 계신 소년원 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의료소년원에 보내면 명수의 눈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또 신체감정도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자 소년원 직원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조치해 보겠습니다.”

소년원 직원의 답변도 있고 해서 부득불 명수에 대해 6개월간 의료소년원에 보내는 7호처분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명수에게 7호처분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며 그곳에서 치료를 잘 받아 남은 눈만이라도 잘 지킬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그런 다음 명수에게 “명수야 이제 소년원으로 가게 될 것인데, 아버지에게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열 번 말해 드리고 가거라.” 라고 하였다.
명수는 꿇어 앉아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무덤덤하고 나지막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소년원에 보내는 처분을 내린다고 하면 감정이 고조되어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명수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차분하게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것이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명수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아버지가 제대로 된 아버지라면 자녀의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려고 마음도 먹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가진 힘으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아버지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그 좌절감은 그런 아버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는 지구의 중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명수 아버지도 역시 아버지였다. 형편상 아들의 눈을 치료할 수가 없어 소년원에 보내야만 하는 명수 아버지의 속은 타들어가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법정 보호자석에 앉아 있던 명수 아버지는 명수의 외침이 반복되어가자 참지 못하고 명수에게 다가가 명수를 일으켜 세운 다음 두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흐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명수에게 말했다.
“명수야, 아빠도 너를 사랑한다. 치료 잘 받고 오너라.”
아버지의 가슴에서 솟구쳐 나오는 울음을 듣자 명수는 자신의 처지를 비로소 자각한 듯 거친 호흡소리와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길어져 나오는 울음을 갑자기 터뜨렸다.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인식한 뒤의 울음이라 생각하니 그 애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명수와 명수 아버지의 통곡에 법정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가까운 곳에 있는 휴지에 손을 뻗는 분이 있는가 하면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법정 천장만 응시하는 분들도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도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눈가에 눈물이 번지기 전에 서둘러 처분을 내린 뒤 잠시 휴정하겠다고 한 다음 법정 뒤의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풀썩 내던진 다음 혼자 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다보니 불현듯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내가 사들고 간 몇 천 원짜리 매실주 한 병을 받아들고서 “이것으로 됐다.”고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 대한 서운함을 다 푸시겠다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또 울었다.